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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모집광고를 보면서

bluewaves 2012. 4. 8. 13:38

위안부 모집광고를 보면서

(우) 1944년10월27일자 「매일신보」위안부 모집 광고

(좌) 1944년7월26일자 「경성일보」위안부 모집 광고


이 광고를 실은 매일신보(每日新報)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기관지로 발행되던 한국어 일간신문이며, 경성일보(京城日報)는 대한제국 말기부터 일제 강점기 동안 발행된 통감부와 총독부의 기관지이며 일본어로 발행되었으므로 친일적인 성격이 강한 관제 매체였다.

위안부 지급대모집, <군>위안부급모
<군>위안부를 얼마나 급했으면 급모집 한다고 했을까. 물론 일제의 변명대로 실제 모집행위를 하는 실체들은 민간 브로커들이라고 하지만일본 육군이 그걸 기획하고 모집은 민간브로커를 내세웠을 것이다.민간 브로커들이공장의 근로정신대로 속이고 사실 위안부로 넘겨버리는사기친 민간 브로커들이 있다면 그 책임은 순전히 브로커들에게만 있다고말하지만근본적으로 위안부 자체를 기획한건 일본육군이다. 당연히그 책임소재는구 일본군 육군이 책임을 인정해야하는거 아닌가.


신문의 위안부 모집 광고에는 「월수300엔이상」이라고 씌어져 있으며 나이는 17,8세 이상, 30세 이하로 되어있다. 당시, 일반 일본병의 월급은 15엔∼20엔, 육군대장의 월급은 550엔. 어떻든 당시로는 고액이었는던 것으로 같다. 또, 선불은 「3000엔까지 가능」이라고 씌어져 있다. 이처럼 광고
에 써있는 고액의 월급을 내세워 일제는 돈으로 조선 여성의 청춘을 사려고 했다는 말인가?

광고의 년대가 일본의 대동아전쟁 말기인 1944년대 인걸로 보면 막바지 일본군을 위한 조선에서의 위안부모집이 틀림없다. 따라서 당시 사회로보아선 여자의 권리가 낮았던 때라 남으로부터빌린 돈 상환 때문에 판매된 여성도 있었을 걸로 생각된다, 또한 근로정신대로 여성을 속여서, 전도금을 그대로 속여서 빼앗으려고 생각한 브로커가 있었다고 한들 이상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숫자가 얼마나 되었으랴.

그런데 이런 모집광고만으론 자발적으로 지원한 조선의 여성이 있었을까. 일본인들은 이런 광고를 이유로위안부는 강제가 아닌 자발적인 참여라고 말하지만 우리가 보았을 땐군대에 끌려 다니며 하루에 2, 30명씩 상대하는 성노예를 모집하는 일본국내에서 하던 광고를 조선의 신문에 낸 것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러한 광고에 의한 모집에는 한계가 있었다. 실제적으로 일본육군에서는 정신대의 수를 충족시키기 위해 마을마다 처녀의 수를 배당했다. 일본군의 앞잡이로 있던 조선 사람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처녀들을 끌고 가기 시작했고, 그녀들은 그렇게 울부짖으며 전선으로 끌려와야 했다. 이렇게 끌려온 처녀들은 생전 처음 본 짐승같은 남자들에 의해, 성욕에 미쳐 날뛰는 남자들에 의해 꽃다운 꿈을 빼앗겨야 했다.

위안부는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여자들을 끌어왔다. 중국은 전쟁을 하면서 중간 중간 끌고 온 반면일본은 자의에 의해 지원했다. 일본여자들은 일본의 사창가에서 일하던 여자들이 주를 이뤘다. 위안부 세계에서도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돈도 훨씬 많이 주고 대우도 잘해주고 그랬다고 한다.상대적으로 한국여자들이나 중국여자들에게는 돈을 주겠다고 해놓고 안 준 경우가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일본군의 성적 노리개로 쓰였던 위안부! 그들은 분명 우리 민족에 있어 결코 잊지못할 상처로 위안부는 그들이 잘못한 것이 아니다. 나라가 힘이 없어 그들이 우리 대신 희생한 것인데 그들이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잘못한 것을 바로 잡지 않는 것은 더 큰 잘못이다. 그래서 위안부할머니 중심으로 수요집회가 10년 넘게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위안부할머니들에게 힘을 보태고 정부차원에서, 나아가 국제기구를 통해서라도 일본의 잘못을 밝혀야 할책임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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