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지혜

주부들의 서재

bluewaves 2011. 3. 30. 00:30
[SPECIAL] 주부들의 서재
2011-02No.511박지현 리포터 기자 true100@empal.com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주부들의 시계는 숨 가쁘게 돌아갑니다. 살림살이와 육아에 빠져 살다 보면 어느새 20~30대가 지나가죠. 그래서 주부들에게 가장 절실한 공간은 자기 생각을 되씹고 하루를 정리하는 서재입니다. 그것이 비록 집 안의 틈새 공간을 개조한 아담한 곳일지라도 말이지요. 여기,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주부들의 서재를 공개합니다. 이들에게 서재는, 좋아하는 책장을 펼치고 자신의 희망을 노트에 적고, 일상을 정리하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진행·취재 박지현 리포터 true100@empal.com
사진 임민철·이의종
Special Part 1
햇살 쏟아지는 간이 휴게실, 계단 서재일상을 기록하는 틈새 공간,
부엌 서재전망 좋은 방, 베란다 서재


햇살 쏟아지는 간이 휴게실
박미경 주부의 ‘계단 서재’

수필가이자 <미즈내일> 고참 리포터로 활동하는 박미경(51) 주부의 서재는 햇살 쏟아지는 계단에 자리한다. 5년쯤 됐다. 책장을 가득 채우던 책들을 집 안 곳곳으로 분산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공간이 1층과 2층 사이 계단이었다. 위치 때문일까. 그녀에게 계단 서재는 책을 읽는 공간이자 비타민 D를 합성(?)하는 이중 공간이다. 특히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는 오전 시간, 책장을 넘길 때 가장 행복하다.
“남편과 아이들이 집을 나서면 비로소 저만의 시간이 시작되죠. 우선 신문을 보고 평소 읽고 싶던 책장을 넘겨요. 가장 사랑하는 책은 화집이에요. 원래 책을 정독하는 스타일인데 화집은 부담 없이 볼 수 있거든요.”
책장에는 피카소와 샤갈, 로댕, 천경자, 배병우 등 선 굵은 예술가들의 화집이 가득하다. 대부분 전시회에 갔다가 저축하듯 구입한 보물들. 워낙 그림을 좋아하는데다, 자식에게 물려줄 심산으로 화집에는 가뿐히 지갑을 열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화가의 생애가 펼쳐졌고 그들의 애틋한 사랑이 보였다. 무엇보다 일상에 매이는 주부로서 잊기 쉬운 감성이 가득했으니, 그 기쁨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가장 좋아하는 화집은 맨 레이(Man Ray)의 것이에요. 연인을 떠나보내면서 그렸다는, 구름이 떠가는 하늘에 커다란 입술이 그려진 작품을 좋아해요. 안방에 포스터를 붙여놨을 만큼. 볼 때마다 제 상상력을 마구 자극하거든요.”

나이를 먹으면서 책에 대한 시선도 바뀌었다. 20대에는 책에 대한 욕심이 앞섰다. 책은 근사하게 자신을 포장해주는 액세서리이자 수집품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수많은 책이 어깨를 누르기 시작했다. 언제 다 읽을까, 갑자기 가슴에 돌을 얹은 것마냥 답답했다. 그 무렵부터 책장의 책을 정리해서 주변에 나눠주기 시작했다.
“서재에 꽂아둘 책은 자신이 사랑하는 20권이면 족해요. 언젠가 책을 읽는데 김승희 시인이 이런 얘기를 했더라구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아기사슴’인데 무슨 책 몇 페이지를 펼치면 그 단어를 항상 볼 수 있어 삶의 위로가 된다고. 서재도 그런 의미가 아닐까요. 자신이 사랑하는 책, 줄 치고 볼 수 있는 책을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기쁨의 공간이죠.”
계단 서재 옆에서 그녀는 누구의 엄마도, 아내도 아니었다.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인간일 뿐. 그래서인지 그녀는 나이 드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지금은 시간을 쪼개어 책을 읽지만, 나중에 나이를 더 먹으면 자신의 몸을 온통 책 속에 빠뜨릴 생각이라면서. 책장을 넘기는 순간,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 정신적 유희를 즐길 수 있으니 무엇이 두려울까.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책장을 넘기는 계단 서재에서, 그녀의 즐거움은 끝이 없는 긴 여행처럼 보였다.

일상을 기록하는 틈새 공간
이승원 주부의 ‘부엌 서재’

행복하게도, 그녀에게는 서재가 두 곳이다. 우선 가족의 공동 놀이터로 통하는 거실 서재가 있다. 벌써 1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거실 서재는 온 가족이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 거실 벽면을 책장으로 가득 세우고 중앙에 6인용 나무테이블을 놓았다. 거실 서재에서 이승원(42) 주부의 공간은 책장 4칸. 교육과 종교 서적이 대부분이다. 나머지 공간은 남편과 아이들 몫이다.
“첫째 용빈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홈스쿨링을 시작하면서 거실을 서재로 바꿨어요. 홈스쿨링을 시작한 건 아이가 아이답게 자랄 수 있게 해주자는 생각에서였어요. 뜻 맞는 세 가정이 모여서 공간을 마련했고, 그것이 지금은 대안학교로 발전했죠. 둘째 유빈이도 초등 과정을 배우고 있답니다.”

홈스쿨링을 하면서 거실 서재는 책을 읽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품게 됐다. 부부의 독서 공간이자 아이들의 학습 공간, 여기에 온 가족의 놀이터로써 의미가 추가됐다. 특히 주말에는 이산가족이 만난 것마냥 온 가족이 거실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행동반경이 비슷해지자 가족 간 소통 구조는 거미줄처럼 촘촘해졌다. 딸이 “아빠, 걔가 새 옷을 샀어!”라고 하면 아빠가 “윤정이?”라고 탁탁 받아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녀에게 거실 서재가 일상의 쉼표라면, 부엌의 개인 서재는 하루의 마침표를 찍는 공간이다. 개인 서재의 탄생은 지난해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의 김포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냉장고를 베란다에 두자 부엌에 네모 상자의 여유 공간이 남았다. 순간 이승원 주부의 아이디어가 빛났다. 거실 테이블을 짜면서 냉장고 사이즈에 맞는 탁자를 맞췄고, 밋밋한 안쪽 벽지에 액자 모양의 스티커를 붙였다. 그러자 아주 근사한 개인 서재가 만들어졌다.

“냉장고 공간이 쑥 들어가잖아요. 그래서 몸을 숨기고 무엇인가 집중해서 일을 처리하고 싶을 때 좋아요. 테이블에는 애독하는 책 몇 권과 성경, 필기도구가 전부예요. 독서실 같은 분위기도 나죠.(웃음)”

주로 거실에서 생활하는 가족과 소통하면서도 자신의 일상을 정리하고 싶었던, 결혼 19년 차 베테랑 주부가 찾아낸 아이디어 번쩍이는 틈새 공간이다. 크기와 비례하지 않는 것이 주부 서재의 특성이 아니던가. 부엌에 개인 서재를 만들자 소소한 물건들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숨 가쁘게 보내던 일상까지 덤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유난히 숫자에 약한 그녀가 대안학교의 살림살이를 도맡으면서 해야 하는, 그러니까 뇌세포들을 총집합시켜 계산기를 두드리는 민감한(?) 작업까지 개인 서재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냉장고가 양보해준 3.3제곱미터 남짓한 개인 서재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늘과 거실 사이, 전망 좋은 방
우윤하 주부의 ‘베란다 서재’

결혼 3년 차, 우윤하(30) 주부의 서재는 분당의 69제곱미터 아파트 베란다를 개조해 만들었다. 그녀에게 서재는 결혼하면 꼭 갖고 싶은 숙원 사업과 같았다. 하지만 4년하고도 6개월을 연애하다 결혼에 골인하자, 자신의 희망 사항은 공동생활에 치여 홀연히 사라졌다. 신접살림에는 안방과 옷방, 거실이 전부. 혼자서 ‘미드’를 보거나 책을 읽던 여유 만만한 행복도 동시에 사라졌다.

“맞벌이를 하지만 집에서 일할 때도 종종 있거든요. 작업 공간을 겸한 휴식 공간이 꼭 필요했죠. 그때 베란다가 눈에 들어왔어요. 폭이 1미터 50센티미터 정도로 꽤 넓었거든요. 확장할까, 살짝 고민하다 저만의 공간으로 만들기로 결심했죠.”

시작은 인테리어를 하기 위한 인터넷 검색이었다. 2주간 리모델링을 하면서 100만 원을 과감히 투자, 베란다에 아담한 서재를 만들었다. ‘개조’에는 바닥을 수리하고 장을 짜서 만들고, 의자를 사서 넣는 것까지 포함됐다. 하늘을 향해 놓은 테이블은 DIY 업체에 의뢰해서 별도로 주문한 것. 서재의 색감은 온통 흰색, 하늘의 구름 색깔을 훔쳐다 놓았다.

“주로 주말에 이용하는데 테이블에 책과 찻잔을 올려놓으면 딱 카페에 온 것 같아요. 예쁘기로는 봄여름이 제일이에요. 푸른 숲이 발 밑에 깔리고, 저 멀리 탄천까지 시야에 들어오거든요. 열 살 된 강아지 모모도 항상 함께 한답니다.”

양수리에나 있을 법한 북 카페가 아파트 베란다에 떡하니 탄생된 것. 책장에는 언제나 꺼내서 읽고 싶은 책들이 자리를 잡았다. 가장 사랑하는 책은 당 태종이 나라를 세울 때의 이야기를 담은 역사 소설 >정관정요<시리즈. 일반 주부들에게 낯선 역사소설이 그녀의 최고 애착서가 되기까지는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가 도서관 관장인데다 어머니가 국사 선생님으로 일하셨어요. 자연히 어릴 때부터 집 안에 역사책이 가득했죠. 주중에는 아버지가 항상 역사책을 빌려오셨고, 주말에는 온 가족이 20권짜리 역사물 비디오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그래서인지 저도 역사소설을 제일 좋아해요. 환경이 무섭긴 무섭죠?(웃음)”

여자들이 손사래 치는 >삼국지<나 >초한지<가 그녀에겐 가장 흥미로운 삶의 지침서가 됐다. 지금도 서재의 중심에는 >정관정요<가 터줏대감처럼 자리하고 있을 정도로 역사서에 대한 그녀의 애착은 유별나다. 올해는 서재에 >수학의 정석<을 추가하고 싶은 것이 새로운 바람. 이유를 들어보니 올해 임신을 해서 태교로 >수학의 정석<을 딱 세 번 풀고 싶다는 사연이 담겨 있었다(지인이 이렇게 태교를 해서 정말 똑똑한 아이를 낳았다면서). 올봄, 베란다 너머가 초록 숲으로 변할 무렵 그녀의 서재에 >수학의 정석<이 펼쳐져 있기를 바란다.

Special Part 2

리포터의 ‘나만의 거실 서재’ 도전기
가족이 함께 해서 더 좋은 공간

아이들이 자라면서 ‘나만의 서재’는 그림의 떡이 되어버렸다. 방마다 있는 책꽂이에는 아이들의 책이 가득하다. 책 읽기 가장 좋은 공간도 아이들의 자리다. 애지중지 모은 내 책들은 한구석에 쌓여가고, 이리저리 옮기는 것도 힘들어졌다. 그래서 갈 곳 없던 책들에게 제자리를 찾아주기로 했다. 거실의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던 소파를 없애고 책장을 들이기로 한 것.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한,
리포터의 거실 서재 만들기 대장정!

진행·사진 김지민 리포터 sally0602@naver.com


높은 천장과, 천장까지 닿는 책장, 넓은 통창 앞의 안락의자, 저절로 글이 써질 것 같은 클래식한 책상. 드라마 <시크릿가든>에 나오는 주인공의 서재는 리포터의 희망 사항일 뿐. 하지만 사회 지도층이 아닌 리포터로서는 살고 있는 공간을 활용하는 수밖에. 집 안의 가장 넓은 공간인 거실을 서재로 바꾸기로 했다.

Step1
소파와 헤어지기
볕 잘 드는 오후 책 한 권 들고 소파에 앉으면 독서 삼매경에 빠질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책을 펼치기도 전에 손은 벌써 TV 리모컨을 누르고, 몸이라도 노곤하면 곧바로 침대로 용도 변경. 바쁜 아침, 아이들을 겨우 깨워놓고 돌아서면 어느새 소파에서 다시 잠들고, 남편은 밤마다 네로 황제가 되어 뉴스를 본다.

소파 주변에 가족이 읽을 책을 늘어놓아도 소파와 맞은편에 떡하니 놓인 TV와 찰떡궁합이 되어 가족의 책 읽기를 원천적으로 막아버린다. 넓고 편해서 온 가족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소파. 돌이켜보니 소파가 우리 가족을 길들이고 있었다.
소파를 없애겠다고 선언하자 남편과 아이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책과 함께 하는 공간을 위해 소파를 퇴출시켰다. 소파를 들어내고, 벽에 건 그림까지 다른 곳으로 옮기고 나니 생각보다 훨씬 넓다. 그러고 보니 벽에 그림 달 때 말고는 벽을 바라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가족의 서재가 될 벽을 마주 보며 면벽참선!­­­


Step2
책이 사는 집, 책장 장만하기
적당한 가격 한샘, 까사미아 등의 전시장에도 가보고, 사당동의 가구 골목도 다녀 봤지만, 브랜드 제품이라도 선반이 너무 얇거나 제품 대비 비싼 가격 등 체크리스트에 맞는 책장을 구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맞추는 것도 생각해보았는데, 완성된 제품이 마음에 안들 경우 반품이나 환불이 불가능했다.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마음에 꼭 드는 제품을 찾았다. 브랜드 제품이면서도 19퍼센트 할인 행사를 해, 가격이 적당했다. 인터넷으로 제품을 구입할 경우 배송 날짜를 소비자가 정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원하는 날짜에 기사가 직접 배송하고 설치까지 해주니 금상첨화.

책장 구입 CHECK LIST
01 색상 짙은 월넛
02 너비 벽의 너비와 같을 것
03 높이 천장까지 닿지 않을 것
04 그밖에 책의 무게에 휘지 않을 만큼 강한 선반. 책장의 수는 2~3개로, 책장을 넣거나 빼는 것이 가능할 것.


Step3
책 정리하기
거실의 책장에 책을 정리하기 전, 정리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온 가족이 각자의 책을 점검했다. 아이들이 읽을 시기가 지난 책, 너무 낡거나 오래된 책, 세로글씨로 조판된 옛날 책들은 따로 묶어 내놓았다. 재활용에 내놓을 책과 남에게 주면 좋을 책도 따로 분류했다. 혹시 볼까 싶어 모아준 잡지도 과감히 버렸다.

책장 정리는 거의 하루 종일이 걸렸다. 콧속이 매캐하고 손은 새까맣다. 팔과 손목도 시큰거린다. 하지만 책갈피에 끼워둔 마른 꽃잎, 책 사이에서 발견한 아이들의 어릴 때 사진, 편지 같은 소소한 추억을 가족과 나누다 보니 어느 때보다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정리가 얼추 끝난 책장을 보니 뿌듯하다. 거실을 서재로 만드는 것에 반대하던 가족도 자기 몫의 책장 앞에서 읽을 책을 골라든다.

서재를 만들고 나서 리포터가 생각하는 서재의 기본 조건은 책과 더불어,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편안한 의자와 책상이다. 마음에 드는 책상과 의자를 찾지 못해 책장 앞은 아직 비어 있다. 소파가 없어지니 앉는 것이 불편해서 그런지 아이들도, 남편도 TV를 켜지 않는다. 대신 뒹굴뒹굴하며 책을 보기도 하고 베기도 하며 책과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거실을 서재로 바꾼 보람이 느껴진다. 내가 꿈꾸던 ‘나만의 서재’는 아니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꽂힌 ‘나만의 서가’를 보는 것만으로 충만해지는 기분이다. 그러고 보니 진정한 서재의 완성은 훌륭한 책장과 책상이 아니라 책과 가까워진 가족인 듯.

책장 정리 CHECK LIST
01 나만의 책을 위한 공간을 확보한다.
02 교과서와 참고서 등 학습에 관련된 책은 아이들 방의 책장에 둔다.
03 연령별 필독서는 거실의 책장에 정리한다.
04 책이 늘어날 것에 대비해 반드시 빈 공간을 둔다.
05 책장 중 한 칸은 당장 읽을 책을 두는 공간으로 정해 아이들의 독서 상황을 파악한다.


[출처: 미즈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