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이야기
`가족 잃고 구걸, 글도 못배웠는데… 나라가 5000원 내미나`
bluewaves
2011. 10. 18. 19:58
"가족 잃고 구걸, 글도 못배웠는데… 나라가 5000원 내미나"
'오빠 戰死 보상금 5000원' 판정받은 김명복씨
오빠는 전쟁터로 가고 폭격에 두 딸 잃은 어머니는 정신질환에 '미친×' 욕 들어
난 학교도 못가고 눈물 세월 "오빠 찾아라" 엄마 유언에 10년간 혼자 찾아헤매다
'현충원 안장' 알아냈는데… 보훈처가 내민 5000원은 가족들의 고통 비웃는 것
"어떻게 나라가 이럴 수 있나?"오빠의 전사(戰死) 대가로 국가로부터 '5000원 보상금' 판정을 받은 김명복(63)씨는 하염없이 울먹였다. 17일 경남 김해에 사는 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세상천지에 대한민국이 뭐 하는 짓이냐"는 말을 반복했다.
김씨 가족은 6·25 전쟁으로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다. 어머니와 단둘이 남은 김씨는 학교를 다녀본 적도 없이, 구걸하다시피 생계를 이어야 했다고 했다. 수화기를 통해 건네오는 그의 목소리는 그 세월이 온통 묻어 있는 듯 했다.
김씨는 1948년 경북 영덕군 영해면의 해변 마을에서 1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1950년 5월 지병으로 먼저 떠났다. 한 달 뒤 6·25 전쟁이 터졌고, 당시 포항고등학교 3학년인 오빠 김용길(당시 18세)씨는 집으로 돌아왔다가 며칠 뒤 군대를 갔다.
김씨는 "(군대 가러 모인) 운동장에서 오빠는 저를 등에 업은 어머니에게 '동생들이 너무 불쌍하다' '금방 돌아와서 취직해 동생들을 학교에 보내겠다'고 말한 뒤 전선(戰線)으로 갔다고 들었다"고 했다. 김씨 가족도 곧바로 피란길에 올랐지만, 도중에 폭격을 만나 언니 둘이 죽었다. 모친 등에 업힌 김씨만 살아남고 뒤따르던 언니들은 죽은 것이었다. 며칠을 앓아누운 어머니는 그 뒤로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했다. 정신질환이었다.
모친과 함께 경북 영덕의 산골 마을로 피신한 김씨는 이때부터 남의 집 밭일을 도와주고 숙식을 해결했다. "엄마 손 잡고 이 집 가서 한 그릇 얻어먹고 또 저 집 가서…"라고 했다. 김씨는 "어머니와 함께 길을 가다가 누군가 '미친×'이라며 던진 돌멩이에 맞아 울었던 기억도 난다"고 했다. 학교는 다니지 못해 지금도 문맹이다. 열 살 때 마을 이장에게 입양이 됐고, 그때부터 50년간 '박(朴)씨'로 살았다. 10대 중반에 홀로 부산으로 건너가 미용실에 취직한 그는 그곳에서 남편을 만나 어머니를 모시고 시집을 갔다.
김씨는 1996년 모친으로부터 오빠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 그는 "엄마가 그 해 정신이 잠시 맑아져, 제게 '네 오빠 이름은 김용길이다. 네가 꼭 찾아야 한다'고 당부하고는 며칠 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때부터 김씨의 '오빠 찾기'가 시작됐다. 국방부와 보훈처를 수차례 찾았지만 "오빠의 군번(軍番)을 알아오기 전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김씨는 2006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국립대전현충원 민원실을 찾았다. "이름은 김용길, 고향은 경북 영덕군…." 간단한 신상 정보를 대자, 10년간 국방부와 보훈처가 찾지 못한 오빠의 행방이 나왔다. '일병 김용길' '1950년 11월 24일 경기도 가평에서 전사' '국립서울현충원 안장'. 김씨는 "듣자마자 감격스러워서 주저앉아 울었다"고 말했다.
- ▲ 6·25전쟁 때 전사한 오빠의 사망 보상금을 신청한 김명복(63)씨가 지난 4월 창원보훈지청으로부터 받은 군인 사망 보상금 지급 안내 통지서(왼쪽). ‘지급금액 5000원’이라고 적혀 있다. /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김씨는 17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4월, 5000원 보상 통지서를 받고 너무 어이없고 화가 나서 잠시 정신을 잃었었다"고 했다. "저같이 힘없고 배운 거 없는 사람이 무시당하는 건 세상 이치라 해도, 나라 지키려고 전쟁 나가서 죽은 오빠 같은 사람한테 나라가 어떻게 5000원을 줄 수 있습니까?"
김씨는 "어머니의 유언 때문에 오빠 찾기를 시작했지만 '까막눈'이 나라 상대하려니 막막해서 수백번 포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김씨는 "유족에게 보상금은 일종의 위로금"이라면서 "5000원은 그동안 유족들이 겪은 고통을 비웃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전쟁 유족이 나처럼 이렇게 먼 길을 돌아오는 일이 다신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씨는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 비용으로 1000만원을 썼다. 이 돈은 제대한 아들을 위해 모아둔 등록금이었다고 한다.
김씨는 김해에서 남편 남모(64)씨, 1남2녀의 자녀와 살고 있다. 한때 미용실을 했으나 건강이 좋지 않아 지금은 그만뒀다
[6·25 전사자 보상규정 무엇이 문제인가] 자식없는 전사자 많은데 직계만 보훈혜택, 그나마 있던 보상 규정도 1974년에 폐기
- ▲ 지난 2006년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산읍리고지에서 육군유해발군단 소속 장병들이 6·25참전 전사자 유해발굴 작업 후 태극기로 감싼 유골·유품함에 거수경례를 올리고 있다. /조선일보DB
정부는 6·25전쟁 중인 1951년 2월 대통령령으로 '군인사망급여금 규정'을 발효했다. 6·25전쟁 전사자 사망 보상금으로 5만환을 지급하되 보상금 청구 시한은 사망한 날로부터 5년 내로 한정했다. 그나마 이 규정은 1974년 폐기됐다.
그러나 유족들이 가족의 전사 사실을 알고 보훈처 등에 문의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국방부와 육군이 전사자 유족찾기 캠페인을 벌여 유족들이 뒤늦게 전사 사실을 알게 된 뒤 그런 사례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보훈처는 이에 따라 관련 법령을 검토한 결과 군인연금법상 군인사망 보상금을 관련 근거로 찾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군인연금법상 군인사망 보상금은 군인이 복무 중 전사ㆍ순직 사망했을 때 그에 대한 재해보상으로 유족에게 지급하는 금액으로 규정돼 있다. 보훈처는 이어 지난달엔 '5만환(5만원)'으로 돼 있는 보상금 금액을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해 현재 가치로 환산한 사망 보상금을 지급토록 하고 이 법 시행 이전에 사망 보상금을 청구했거나 보상금 결정액이 현재 가치에 비해 현저히 적어 행정소송 등을 진행 중인 사람들에 대해서도 개정 법령을 적용해 보상토록 하자는 구체적인 의견을 국방부에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는 이에 대해 군인연금법상 군인사망 보상금 규정엔 6·25전쟁에 대한 언급이 없어 이에 대한 구체적인 조항 신설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보훈처 관계자는 "6·25전쟁 전사자로 인정되면 직계 유족의 경우 사망 보상금 외에 유족 보상금과 보훈연금 등 혜택을 받게 된다"며 "이번 김모씨의 경우 직계 유족에 비해 혜택이 없는 방계 유족이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나라 위한 목숨값 5000원] 보훈예산, 미국 총예산의 2.7%… 한국은 1.7%… 보훈병원, 미국은 171곳 운영… 한국은 5곳
캐나다선 전사자 귀환때 총독 참여하고 TV생중계
영국 왕실은 16일 잉글랜드 서부의 작은 마을 우튼 바셋에 왕실을 의미하는 'Royal' 칭호를 부여했다. 이 지역 주민들이 2007년 4월부터 인근 공군기지로 송환된 전사자의 유해가 마을 길을 지날 때마다 묵념을 해 온 것에 대한 '표창'이었다. 우튼 바셋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펼쳐온 추모행사는 영국의 BBC 등을 통해 중계되면서 감동을 주었다. 그 후 이 마을은 유해 송환이 있을 때마다 노병(老兵)들과 유가족이 찾아와 전사자의 희생을 기리는 장소가 됐다.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대신해 이 마을을 방문한 앤 공주는 "나라를 위해 숨져간 군인들에 대한 존엄을 높인 데 대해 여왕과 국가를 대신해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이 마을이 '로열 우튼 바셋'이 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필립 하몬드 국방장관 등 수천여명이 이날 행사에 참석했다.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행사에 영국 공주와 총리가 참석해서 전사자 예우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직접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 ▲ 새벽 4시… 美國은 대통령이 전사자를 맞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09년 10월 델라웨어주의 도버 공군기지에 도착한 아프가니스탄 전사자들의 관을 거수경례로 맞이하고 있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은 전사한 군인들의 유해에 경의를 표하고자 새벽 4시에 기지를 찾았다. /AP
경기대 유영옥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은 참전 용사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보훈부 예산이 연간 약 81조원이다. 미국 전체 예산의 2.7% 규모다. 또 부상자들을 위해 종합병원 171곳, 외래진료소 300여 곳, 요양원 100여 곳을 운영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참전용사 등 국가 유공자를 전담하는 보훈병원이 서울·부산·대구·대전·광주 등 5곳에 불과하다.
프랑스도 보훈정책 관련 예산이 연간 약 63조원에 이른다. 호주의 보훈예산은 8조9000억원으로 국가 예산의 5.5%를 차지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보훈처 예산은 연간 약 3조원 수준이다. 전체 국가 예산의 1.7% 수준이다. 유 교수는 "군인들이 자신은 희생해도 최소한 가족은 국가가 돌볼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면 누가 몸을 던지겠는가"라며 "보훈처를 장관급 인사가 맡도록 하고, 진짜 국가 유공자에게 혜택이 더 돌아가도록 시스템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캐나다에서는 전사자가 귀환할 때면 국가 지도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행사를 공영방송에서 생중계한다. 총독을 비롯한 국가의 주요 인사가 시신이 도착하는 공군기지를 방문하곤 한다. 미국에서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9년 10월 도버 공군기지에서 새벽 4시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도착하는 전사자의 유해를 거수경례로 맞았다.